스트럼·라투르,「사회적 연계를 재정의하기: 개코원숭이에서 인간까지」

Redefining the social link: from baboons to humans

S. S. Strum and Bruno Latour

Social Science Information 1987 26: 783 DOI: 10.1177/053901887026004004

The online version of this article can be found at: http://ssi.sagepub.com/content/26/4/783

셜리 스트럼, 브뤼노 라투르(1987)

오역 있을 수 있음.

지난 십 년간, 인간/비인간 사회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가 사회의 본성 그리고 사회적 연계에 대한 기성의 사고에 은밀히 도전해왔다. 그 정보들의 모호함과 불일치는 사회를 단순한 용어로 정의하려는 앞선 시도들을 완전히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이 부조화와 불일치는 그저 더 많은 정보와 더 나은 방법론이 마련된다면, 또 이데올로기와 아마추어리즘으로부터 과학적 시도를 더욱 격리한다면 교정될 “실행상의 어려움”의 결과일 뿐일까? 이 논문에서 우리는 이러한 관습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문제에 접근하는 다른 방식을 제안하려 한다.

만약 불일치야말로 실재이며, 기존 맥락의 틀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찌하겠는가? 틀 짓는 방식의 변화가 불러올 영향을 탐구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 사회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들을 살펴본 다음, 한 가지 특정 사례를 검토할 것이다. 그 사례는 바로 개코원숭이 사회에 관한 생각들의 역사다. 그다음 사회적 연계의 진화에 관한 우리의 생각에 사회의 다른 의미들을 적용했을 때 생겨나는 결과들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정치”의 진화 [문제]를 포함한 기성의 인간·비인간 사회학이 지닌 여러 문제점을 분석할 새로운 틀을 제시하면서 글을 마칠 것이다.

사회의 개념을 재정의하기

탐색과 포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사회과학은 “사회”가 명확히 정의된 객체가 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을 채택해왔다. 사회의 행위자들은, 사회학 학파마다 그들에게 부여하는 활동성의 정도가 다를지라도, 어쨌든 더 큰 사회에 속한다. 이는 사회과학자들이 규모의 차이를 사고함을 의미한다. 즉 미시 층위(행위자들, 구성원들, 참가자들)와 거시 층위(전체로서의 사회)(Knorr and Cicourel, 1981). 지난 이십 년간, 사회에 대한 이 지시적 정의는 에스노메소돌로지(Garfinkel, 1967)와 과학 사회학(Knorr and Mulkay, 1983)에 의해, 그리고 특히 사회과학들(Law, 1986)과 기술 사회학(Latour, 1986a)에 의해 도전받아왔다. 이런 연구들 덕분에, 미시 층위와 거시 층위의 관습적 구분은 흐려졌고, 사회에 대한 전통적 정의는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그 대신 사회는 그들의 “작업” 과정에서 “층위”를 침범하는 활동적인 사회적 존재에 의해 지속적으로 구성되거나 “수행된다”는 관점이 강력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원칙과 실천의 측면에서 다른 두 입장, 즉 지시적ostensive 모델과 수행적performative 모델은 사회적 연계가 어떻게 특징지어지는지에 대해 결정적으로 다른 결론을 내린다. 두 관점은 다음처럼 요약될 수 있다.

――사회적 연계에 대한 지시적 정의

1. 원칙적으로, 사회를 하나로 묶는 전형적 속성들, 사회적 연계와 그것의 진화를 설명하는 속성들을 발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실천적으로, 그것들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 이런 속성들과 요소들은 사회적이다. 만약 이와 다른 속성들이 포함된다면 그때 사회에 대한 설명은 경제학, 생물학, 심리학 등의 영역일 것이다.

3. 사회적 행위자들(그들의 규모가 미시적이건 거시적이건 간에)은 하나로 정의되는 사회 안에 있다. 행위자의 활동적인 정도에 따라 그들의 활동은 제한될 텐데, 그들은 거대한 사회의 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4. 행위자들이 사회 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의 원칙들을 밝혀내는 데 관심이 있는 과학자들에게 유용한 정보원이다. 그러나 행위자들은 사회의 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설령 그들이 “지각 있는” 존재라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전체 그림을 보거나 알 수 없다.

5. 적절한 방법론이 있다면 사회과학자들은 사회를 하나로 묶는 원칙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행위자의 신념과 행동을 구분할 수 있다. 그렇게 고안된 전체로서의 사회의 그림은 그 속에 있는 개별 사회적 행위자들로서는 접근 불가능하다.

이 전통적 패러다임에 따르면, 사회는 존재하고, 행위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규칙과 구조에 따라 그것에 들어간다. 사회의 전반적인 본성은 행위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질 수도 없다. 사회 바깥에 서 있는 과학자들만이 그것을 전체적으로 보고 이해할 능력을 지닌다.

――사회적 연계에 대한 수행적정의

1. 사회생활에 특유한 속성을 설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실천적으로 가능하다.

2. 요소들, 속성들의 다양성은 사회적 행위자들에 의해 정의되는 사회적 연계에 관여한다. 그것들의 다양성은 순수하게 사회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학, 생물학, 심리학 등의 영역을 포괄할 수 있다.

3. 실천적으로, 자신과 타자들에 대해 행위자들은(그들의 규모가 미시적이건 거시적이건 간에) 사회가 무엇인지 전체와 부분 양쪽에서 정의한다.

4. 사회를 “수행하는” 행위자들은 그들의 성공을 위해 무엇이 필수적인지 안다. 이 앎은 부분에 대한, 전체에 대한, 신념과 행동의 차이에 대한 지식을 포함할 것이다.

5. 사회과학자들은 다른 여느 사회적 행위자들처럼 질문을 제기하고, 과학자들이 아닌 이들보다 더도 덜도 아닌 정도로 사회를 “수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에 대한 그들의 정의를 강제하는 다른 실천적 방법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수행적 관점에 따르면, 사회는 그것을 정의하려는 수많은 노력으로 구성된다. 즉 사회는, 그것을 정의하려고 분투하는 과학자를 포함한 모든 행위자의 수행으로 달성되는 무언가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적 행위자는, 가핑클의 표현(1967)을 사용하자면, “문화적 백치dopes”에서 사회의 활동적 달성자로 변모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는, 행위자들 간의 관계에서 사회적 연계를 찾는 것보다는, 행위자들이―사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그들의 탐색을 통해―어떻게 그런 연계를 달성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전통적 체계에서 수행적 체계로 이동하면 두 쌍의 반비례 관계들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모든 행위자 사이의 낯선 대칭으로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비대칭을 지시한다. 첫 번째 반비례 관계는 다음과 같다. 행위자가 활동적일수록, 그들은 다른 행위자와 분리되지 않는다. [활동적 행위자에 대한] 이러한 변화된 정의는 그 행위자가 사회가 무엇인지, 무엇이 사회를 결속하는지, 사회가 어떻게 대체될 수 있는지 조사하는 완전히 숙련된 사회과학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 비대칭 관계는 다음과 같다. 행위자들이 동등해 보일수록, 원칙적으로는, 그들이 사회를 달성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수단 때문에 그들 사이의 수행적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제 이러한 원칙들이 개코원숭이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주겠다.

개코원숭이: 생각들의 역사

우리가 대다수의 서구 철학자보다 개코원숭이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다윈이 말했을 때, 그는 사실 개코원숭이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Darwin, 1977). 다른 동물들의 행동과 사회에 대한 근대적 과학 연구를 개시한 것이 바로 다윈주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개코원숭이에 대한 전-과학적인 통속적 생각은 그들이 질서 없는 짐승들의 무리여서 전적으로 사회적 조직화가 부재하며, 무작위로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Morris and Morris, 1966). [그러나] 최초의 “과학적” 연구는 [개코원숭이 집단에서] 질서 있는 사회의 한 면모를 포착해냈다. 원숭이에 대한 초기의 실험적 연구(Kemmpt, 1917)와 포획된 개코원숭이에 대한 연구(Zuckerman, 1932)는 야생에서의 그 동물의 행동에 대해서는 아주 약간의 지식만을 포함하고 있었다(Marais, 1956, 1969; Zuckerman, 1932). 그럼에도 이 연구들은 개코원숭이가, 매우 단순하게 조직된 것일지라도 사회를 가지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 연구들에서는] 성과 지배력이 주요 요인이었다(Maslow, 1936; Zuckerman, 1932). 성, 혹은 암컷에 성적으로 접근하려는 수컷의 열망은 사회를 하나로 유지했다. 개코원숭이는 질서 있지만 단순한 영장류 사회에 대한 최초이자 가장 고전적인 표상representatives이었다.

1950년대에 개시된 근대적인 개코원숭이 현장 연구들(DeVore, 1965; DeVore and Hall, 1965; Hall, 1963; Washburn and DeVore, 1961)은 영장류의 행동을 그것의 본성적인, 즉 진화적인 배경 속에서 이해하려는 선구적 시도에 속한다(Washburn and Hamburg, 1965; Washburn et al., 1965). 그 연구들은 사회가 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님을 암시했다. 대신 사회적 구조는 수컷의 공격성의 영향력과 거기에서 기인하는 지배 계급에 의해 구성되었다. 성적이지 않은 사회적 유대가 무리를 결속했다. 워시번과 드보어, 홀(DeVore and Hall, 1965; Hall and DeVore, 1965; Washburn and DeVore, 1961)은 각자의 결과를 비교하면서, 그들이 연구한 개코원숭이가 세 종이 포함되어 있고 수백에서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다른 무리인데도 유사하다는 점에 감명받았다. 사회적 생활로 조직된 특정 개코원숭이의 사례뿐만 아니라, 지리와 종차(種差)에 상관없이 개코원숭이는 동일한 사회를 유지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유인원 현장 연구가 급증했고, 개코원숭이 연구 역시 마찬가지였다(e.g. Altmann and Altmann, 1971; Ransom, 1984; Rowell, 1966, 1969; Stoltz and Saayman, 1970). 다양한 서식지에서 행해진 개코원숭이에 대한 관찰은 개코원숭이 사회에 관한 기존의 생각에 도전했다. 우간다의 숲에 사는 개코원숭이(Rowell, 1966, 1969)에게는 수컷의 안정적인 지배 체계가 결여되어 있었고, “적응적인” 수컷의 다채로운 행동이 일찍 보고되었다. 수컷의 지배 질서보다 친족 관계와 우정이 개코원숭이 사회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Ransom, 1984; Ransom and Ransom, 1971; Strum, 1975a, 1982). 이러한 새로운 발견은 인식된 특정 동물들을 개별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추적하는 것을 비롯한 새로운 방법론들 덕분에 가능해졌다. 그리하여 관찰된 개코원숭이 무리들은 ‘표준’에서 갈라져 나왔고, 개코원숭이 행동 방식의 다양함은 종의 우세 패턴과 진화론적 해석 모두를 약화시켰다.

종 내 변동성이라는 난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늘어나는 불일치(그리고, 함축적으로 말해서 개코원숭이 행동의 증가하는 예측 불가능성)를 누락시키는 것뿐인데, 이는 관찰자들의 정보와 관점을 거부하는 일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은 이러했다. 개코원숭이 집단들은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고, 다만 연구들이 부정확했을 뿐이다. 개코원숭이 사회의 구조는 고정적인 것으로, 다양한 관찰의 심층에 존재한다.

그러나 개코원숭이들(그리고 다른 유인원 종들) 속에서 보고된 수많은 변동은 방법론적 논쟁을 결국 어느 정도 가라앉혔다. 과학자들은 행동 방식과 사회가 모두 가변적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였다(e.g. Crook, 1970; Crook and Gartlan, 1966; Eisenberg et al., 1972; Gartlan, 1968; Jay, 1968; struhsaker, 1969). 어려운 문제는 가변성을 좌우하는 원칙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들은 생태학과 계통발생학이었지만, 결국 [그것들이 아니라] 1970년대 중반의 사회생물학적 접근(Wilson, 1975)만이 새로운 종합을 제공했다. 이 개조된 진화론적 틀은, 사회적 원칙에 관한 의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제공했다. 고정적인 요소는 사회적 구조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개체의 유전자형에 있었다. 초기의 진화론적 공식이 암시했던 것처럼, 집단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개체가 선택되는 것이었다. 사회 자체는 안정적이지만 그 사회는 개체의 결단, 진화적 안정전략(Evolutionary Stable Strategy, ESS),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ESS들의 “우연적” 결과였다(Maynard Smith, 1976; Maynald Smith and Parker, 1976; Maynard Smith and Price, 1973).

[그런데] 사회생물학적 해결책은 사회를 달성할 수 있는 ‘근접원인으로서의 수단들’에 대한 의문의 여지를 남겼다. “궁극적” 시나리오에서는 ‘스마트 유전자 계산기’가 적절한 행위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전체 개체는 사회의 실제 참가자로서 공존, 경쟁 또는 협력했다. 개코원숭이(그리고 영장류) 연구의 가장 최근 단계는 이러한 근접원인의 층위를 다뤄왔다. [그 연구들에서] 정보는 주로 야생에서의 개코원숭이를 장기간 연구하면서 얻어진다(연구 현장: 케냐―엠보젤리, 길길/레이키피아, 마사이마라; 탄자니아―곰베, 미쿠미; 보츠와나―오카방고).

최근의 연구는 우리의 논의에 대단히 흥미롭다. 최근 연구 동향은 사회생물학적인 “스마트 생물학” 논의가 허용했던 것보다 개코원숭이가 더 풍부한 사회적 기술과 사회적 의식을 가졌음을 인정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사회적 기술은 협상하기, 시험하기, 평가하기, 조종하기를 포함한다(Strum, 1975a,b, 1981, 1982, 1983a,b,c, 근간; Western and Strum, 1983). 유전자에 의해 번식 성공률을 극대화하도록 추동되는 수컷 개코원숭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단순히 자신의 크기나 힘 혹은 지배 서열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설령 지배력만으로 충분하[게 설명될 수 있]다 할지라도, 다음과 같은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개코원숭이는 누가 우세한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지배력은 사실fact인가 가공물artefact인가? 그것이 가공물이라면, 누구의 가공물인가? 개코원숭이의 사회를 찾고 있는 관찰자의 것인가? (심지어 고전적인 지배력 연구에서도, 조사관은 지배 계급을 “발견”하기 위해 음식을 둘러싼 경쟁으로 수컷들을 짝지어 넣으면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혹 그것은 관찰자와 개코원숭이 모두가 풀어야만 하는 보편적 문제인가?

최근의 증거가 제시하듯이 개코원숭이들이 누가 누구와 동맹인지, 누가 누구를 이끄는지, 어떤 전략이 그들의 목표를 더 잘 성취하는지 알아내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시험한다면, 개코원숭이와 과학자 양자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코원숭이가 지속적으로 협상하고 있다면, 사회적 연계는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변모한다. 약간 다르게 말해보자. 개코원숭이가 안정적인 구조 속에 들어가 있지 않고 오히려 그 구조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협상하는 중에 있고, 그 협상으로 모두를 떠밀고, [그것의 진행을] 관찰하고 시험하고 있음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단순한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개코원숭이 사회의 다양성은 “수행적” 문제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증거는 뒤집어 생각해보면 훨씬 명백해진다. 만약 들어갈 수 있는 구조가 [미리] 존재했다면, 왜 시험하고, 협상하고, 관찰하는 그 모든 행동이 마련되었겠는가(i.e. Strum, 1975a,b, 1981, 1982, 1983a,b,c; Boese, 1975; Busse and Hamilton, 1981; Cheney, 1977; Dunbar, 1983; Gilmore, 1980; Hamilton et al ., 1975; Hausfater, 1975; Kummer, 1967, 1973, 1978; Kummer et al ., 1974; Nash, 1976; Packer, 1979, 1980; Popp, 1978; Post et al ., 1980; Rasmussen, 1979; Rhine, 1975; Rhine and Owens, 1972; Rhine and Westlund, 1978; Sapolsky, 1982, 1983; Seyfarth, 1976; Smuts, 1982; Stein, 1984; Walters, 1980, 1981; Wasser, 1981)? 그리고 개코원숭만이 이러한 특징을 보이는 비인간 유인원인 것도 아니다(e.g. Bernstein and Ehardt, 1985; Chepko-Sade, 1974; Chepko-Sade and Olivier, 1979; Chepko-Sade and Sade, 1979; DeWaal, 1982; Drickamer, 1974; Gouzoules, 1984; Kaplan, 1978; Kleiman, 1979; Parker and MacNair, 1978; Seyfarth, 1977, 1980; Silk, 1980).

우리는 지금까지의 개코원숭이 데이터와 논의를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개코원숭이 사회에 관한 전통적이고 지시적인 정의는 개코원숭이의 사회생활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수용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일부 정보는 “데이터”로 취급됐고 다른 정보는 무시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불일치로 처리됐다. 둘째, 더 최근의 연구들은 개코원숭이들이 서로 협상하고, 시험하고, 감시하고, 간섭하는데 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의 수행적 정의는 우리가 두 가지 “사실”의 집합을 통합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정의에 따르면, 개코원숭이는 무리 안의 존재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이 존재하는 사회와 무리, 그것의 구조와 경계를 정의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들은 계급제 내부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들의 활동 자체가 그들의 사회적 세계를 질서 지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변화하거나 고정적인 계급 구조는 개코원숭이가 반드시 적응해야 하는 사회의 한 지배적 원칙으로서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상호작용의 기반을 위한 탐색의 잠정적인 결과로서 발전한 것일 수 있다. 사회를 수행하는 개코원숭이들은 [이미 존재하는] 동맹체제에 들어가기보다는, 어떤 관계가 유지되고 어떤 관계가 깨질지 미리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동맹의 가용성과 견고성을 시험한다. 요컨대, 수행적 [관점에서 본] 개코원숭이들은 그들의 사회가 무엇이고 무엇이 될지를 적극적으로 협상하고 재협상하는 사회적 참여자들이다.

사회에 대한 수행적 설명은 전통적인 모델보다 종적(縱的)인 데이터를 더 잘 해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포식자의 행동 방식(Strum, 1975b, 1981, 1983), 수컷의 상호작용(Strum, 1982, 1983a,b), 세력 투쟁의 완화(Strum 1982a,b), 사회적 전략(Strum, 1982, 1983a,b, 근간), 사회적 계략의 발전(Western and Strum, 1983), 주요 연구 집단의 분열(Strum, 근간)을 조사할 때 사실로 드러난다. 사회를 “수행하는” 개코원숭이[라는 아이디어]는 또한 교차-인구적 데이터와 원숭이나 유인원 등 다른 종의 데이터를 더 일관된 방식으로 설명하게 해준다.

사회적 복잡성과 사회적 복합성

우리가 개코원숭이를 그들 사회의 활동적 수행자들로 변모시킨다면, 그들을 인간과 나란히 놓게 되는 것인가? 수행적 패러다임은 [둘 사이에] 중요한 구별을 [또한] 도입한다. 차이점은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개별적 버전을 실행하는 행위자가 사회의 버전을 강제하거나 거대한 규모로 타자를 조직하기 위해 사용하는 실천적 수단이 무엇이냐에 있다.

행위자들이 오직 자신만을 가졌다면, 즉 자원으로 가진 것이 자신의 몸뿐이라면, 안정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과업은 어려울 것이다. 아마 이것이 개코원숭이들의 경우일 테다. 그들은 누가 집단의 일원인지, 무엇이 집단의 적절한 단위체로 고려되어야 하는지, 다른 단위체와의 상호작용의 본질이 무엇인지 등을 결정하려 애쓰지만, 이러한 사안을 한 번에 하나씩 나누어 집중하거나 결정할 수 있게 하는, 단순하거나 단순화하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나이, 젠더, 그리고 아마 친족 관계는 대부분의 상호작용에서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지배 체계의 확장도 친족 관계와 연계되므로, 지배 서열 역시 조건으로 주어질 수 있다(Chapais and Schulman, 1980; Hausfater et al., 1982). 그러나 나이, 친족, 친족에 연계된 지배[체제]조차도 결정적 지점에서는 협상의 대상일 것이다(Altmann, 1980; Cheney, 1977; ChepkoSade and Sade, 1979; Popp and DeVore, 1979; Trivers, 1972; Walters, 1981; Wasser, 1982; Wasser and Barash, 1981). 즉 수많은 변수가 동시에 충돌하는 것이다. 이것이 복잡성complexity의 정의이다. 즉 복잡성은 “다수의 대상을 동시에 감수하는 것”이다. 개코원숭이에 관한 것인 한, 그들은 다양한 요소를 한 번에 소화하려 한다.

이제 우리는 개코원숭이가 복잡한 사회에 살고 있고 복잡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사회 질서를 구축하고 보수할 때, 그들은 아주 제한된 자원, 그들 자신의 몸, 자신의 사회적 기술, 그들이 구성할 수 있는 여느 사회적 전략만을 활용한다. 우리 관점에서 한 번에 하나의 요소를 협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비슷한 문제를 지닌 다른 이의 간섭을 끊임없이 받는 개코원숭이는 민속방법론자들ethnomethodologists이 묘사하는 능동적 구성원의 이상적인 예다. 이러한 제한된 자원으로는 약간의 사회적 안정성만을 이룰 수 있다.

더 강대한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추가적인 자원뿐이다. 즉 몸에 각인된 것과 사회적 기술로 이룰 수 있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물질적 자원과 상징들은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강제하고 강화할 수 있고, 사회생활을 복잡성에서 우리가 복합성complication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무언가가 단순한 작업의 성공적 산물일 때 그것은 “복합적”이다. 일련의 단순한 단계들을 밟아나가는 기계에 의해 업무가 달성된다는 점에서, 컴퓨터는 복합적 구조의 전형이다. 우리는 복잡성에서 복합성으로의 이동이 사회생활의 유형들을 결정적이면서도 실천적으로 구별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개코원숭이의 사회생활을 이해하려고 개코원숭이 관찰자들이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려 한다. 먼저, 개체들은 식별되고 이름 붙여졌으며, 집단의 구성은 나이, 성별, 친족, 그리고 지배 서열[등의 요인]에 의해 측정되었다. 행동 양식의 항목들은 식별되고, 규정되고, 코드화되었다. 그러고 나서, 동시에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 중에서 개체들, 시기들, 활동들로 구획된 한 부분집합에 의도적으로 주의가 집중되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절차가 그저 개코원숭이 사회에 실존하고 그 사회에 대해 알려주는 사회 구조에 도달하는 엄정한 방법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과학적 작업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사회에 대한 지시적 정의에 잘 들어맞는다. 그러나 우리의 [수행적] 관점에서는, 인간 탐구자가 개코원숭이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행한 작업은 그야말로 인간 사회를 개코원숭이 사회와 다르게 만드는 과정 그 자체다. 근대적인 과학 탐구자는 변화하고, 모호하고, 하릴 없는 행동, 관계, 의미의 복잡성을 단순하고, 상징적이고, 명확하게 다듬어진 항목들의 복합적 배열로 대체한다. 이러한 단순화는 중차대한 과업이다.

어떻게 사회적 복잡성이 사회적 복합성으로 이동하게 되는가? 그림1은 우리가 이 진행을 상상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선은, 우리의 용어로 말하자면 복잡한 사회성을 띠는 개코원숭이식 사회를 나타낸다. 이 사회는 복잡하지만 복합적이지는 않은데, 개체들이 타자들을 거대한 규모로 조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회적 협상의 높은 강도는 자기 버전의 사회를 타자에게 강요하지 못하는, 혹은 사회를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것으로 관철하지 못하는 그들의 상대적 무력함을 반영한다.

두 번째 선은 가설적인 수렵 채집 무리를 표시하는데, 이들이 사회를 구축하는 데 이용하는 물질적, 상징적 수단은 근대적 산업 사회에 비교하면 빈곤하지만, 개코원숭이와 비교하면 풍부하다. 여기서 언어, 상징, 물질적 대상은 사회적 질서의 본성을 탐지하고 협상하는 과업을 단순화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사회를 수행하는 데 있어 몸들은 각자의 사회적 전략을 지속하지만, 더 거대하고, 지속적이고, 덜 복잡한 규모에서 그렇게 한다. 물질적 자원, 그리고 언어와 관련된 상징적 혁신은 개체들이 타자에게 더 많은 힘을 행사하고 영향력을 가지게 함으로써 사회적 질서의 본성을 규정할 수 있게 한다.

세 번째 선은 농경 사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기서는 사회적 유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 사실 [이 단계에 이르면] 사회적 유대는 개체의 상대적인 부재 속에서도 지속될 수 있다. 이 사회는 수렵 채집 무리에서보다 더 복합적이고 강력하며, 협상의 각 단계가 훨씬 덜 복잡하기 때문에 더 거대한 규모에서 사회를 수행할 수 있다.

근대 산업 사회는 도표의 네 번째 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여기서 개체들은 타자를 장대한 규모에서 조직하고 “동원”할 수 있다. 우리의 설정에 대입해보면, 산업 사회의 기술은 다른 인간, 동물 사회와 비교했을 때 사회적 과업들을 덜 복잡하게 하면서 더 복합적으로 만드는 단순화의 기술이다. 다양한 요소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한 번에 하나의 변수를 순차적으로 협상함으로써 안정적인 복합적 구조가 만들어진다. 사회적 복합성[이 증대되는]의 과정에 운용되는 육체 외적인extra-somatic 자원을 통해 다국적 기업, 주나 국가 같은 단위체가 구성될 수 있게 된다(Lature, 1987). 우리가 스케치한 동향은 개코원숭이에게서 발견되는 복잡한 사회성에서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복합적 사회성으로 흘러간다. 타자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사회에 대한 자신의 버전을 강요하거나, 영속적인 사회적 질서를 만들 힘을 거의 갖지 않은 개체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개체가 사회적 협상을 단순화하기 위해 더더욱 많은 물질과 “육체 외적인” 수단을 운용하는 상황을 마주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은 타자―이때 타자가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것이 아닐지라도―를 거대한 규모에서 조직할 능력을 개체들에게 부여한다. 새로운 추가적 자원을 사용하면서, 사회적 행위자들은 (수컷 개코원숭이 사이의 동맹처럼) 약하고 재협상의 여지가 있는 연합을 강하고 파괴할 수 없는 단위체로 만들 수 있다(Callon and Latour, 1981; Latour, 1986a).

수행적인 사회적 유대의 진화

수행적 틀을 채택하면 두 가지 중요한 공식이 뒤따라 생겨난다. 첫째로 그것은 모든 사회적 참여자에게 완전한 활동성을 부여한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또 함께 사회를 만들어내며, 이론적으로는 모두 동등하다. 하지만 둘째로,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인적 관점에 따라 타자를 조직하고 사회적 유대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강요하는 행위자들의 실천적 수단을 고려할 때, 새로운 비대칭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사회적 유대의 진화를 설명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뒤따르는 내용은 진화적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의 의미에 대한 분류이다.

우리는 사회에 대한 통상적인 정의, 즉 “연합하기”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한 행위자가 사회적 연계를 유지하도록 할 수 있는가? 어떤 연합이 더 강해지고 오래 지속되는 동안, 어떤 연합은 약해진다. 개코원숭이에서 인간에 이르는, 복잡성과 복합성에 대한 우리의 비교 작업은 자원들이 사회의 구축과 안정성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회라는 단어에 대한 어원 역시 참고할 만하다. 그것의 뿌리는 seq-, sequi이며 그 뜻은 “뒤따름following”이다. 라틴어 “socius”는 함께하는 동료, 파트너, 동지, 동반자, 일행을 뜻한다. “socio”는 함께 뭉친 것, 연합, 공동으로 하거나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언어들에서 “사회”라는 단어의 역사적 계보는 첫째로는 누군가를 뒤따르기, 그다음엔 등록하기나 협력하기, 마지막으로는 공동으로 무언가를 갖기라는 뜻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세 가지 뜻은 개코원숭이에게 꽤 잘 들어맞는다. 사회의 다음 뜻은 상업적 사업의 지분을 갖는 것이다. 사회 계약으로서 “사회”는 루소의 발명품이다. “사회” 자체를 사회적 문제이자 질문으로 여긴 것은 19세기의 혁신이다. 비근한 단어로 “사교적sociable”은 사회 집단에서 예의 바르게 지낼 수 있는 개인의 기술을 가리킨다. 단어의 변천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듯, 사회의 의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좁아졌다. 모든 연합과 동연적인[연합의 모든 방식을 아우르는] 정의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 용법에서 사용하는 ‘사회’의 의미는 연합에서 각자 전담하는 부분을 취하는 정치, 생물학, 경제, 법, 심리학, 경영, 기술 기타 등등을 뺀 나머지로 제한된다.

우리가 지지하는 수행적 틀은 사실상 “사회”라는 단어에 연합이라는 원래의 [폭넓은] 뜻을 돌려준다. 이러한 정의를 사용하면 사회를 달성하는 조직체들의 실천적 방식을 비교해볼 수 있다. 그림2는 수행적인 사회적 유대의 가능한 진화 방식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요약한 것이다. 우리는 행위자가 사회를 만들고 연합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자원의 유형에 집중했다. “자원”이라는 관념을 특정 의미로 제한하지는 않았다.

사회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설명에서 ‘사회’가 최초로 의미하는 것은 동종의 군집이다(Latour ans Strum, 1986과 거기에 포함된 자료들을 참고). 그러나 대부분의 설명은 군집과 사회적 기술의 기원을 구별하는 데 실패한다. 군집이 한 번 생겨나면, 그 원인이 뭐가 됐든 간에(e. g. Alock, 1975; Hamilton, 1971), 우리의 모델에서는 두 개의 다른 전략이 가능하다. 첫째는 행위자가 가능한 한 타자에게서 달아나고 분리되는 것이다. 이 선택지는 잠깐의 번식기나 일시적인 연합을 제외하면 혼자 있는 반사회적 동물을 발생시킨다.

두 번째 선택지는 더 흥미롭다. 군집을 이룬 개체가 [무리에서] 달아나지 않는다면, 그/그녀는 새로운 동종의 환경에 적응해야만 한다. 이는 동물의 품행을 다루는 문헌에서 [재현되는] 가장 일반적인 사회의 의미다. 일원이 동종의 타자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행동 양식을 변화시키는 것 말이다.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는 기술을 획득하는 것은 대체로 동종간에 형성되는 환경에 대한 이차적 적응이다. 새로운 사회적 환경에서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개체는 더 영리하게 타자들을 조종하고 계책을 부릴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사회적 선택지가 한 번 골라지고 나면, [다시] 두 가지 다른 가능성이 출현한다. 첫 번째 경우에는 유전자형이 사회적으로 구분될 때까지 변형된다. 곤충 사회는 행위자들의 몸이 비가역적으로 조형된 곳의 예다. 이와는 다른 사회의 의미를 두 번째 선택지에서 찾을 수 있다. 두 번째 경우 유전자형은 유사한 표현형을 낳는다. 이런 표현형은 개체들의 끊임없이 향상되는 사회적 기술에 의해 조작된다. 이 선택지는 또한 두 가지 대안으로 갈라진다.

개코원숭이는 그 중 첫 번째 예를 제공한다. 사회적 기술은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행위자의 정의에 타자를 등록[동참]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개코원숭이는 “무른soft 도구”밖에 갖고 있지 않고, 따라서 “무른” 사회밖에 건설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몸, 지성, 그리고 장기간 축조한 상호작용의 역사 말고는 자신의 정의를 타자에게 설득시키고 요청할 다른 방도가 없다. 이는 복잡한 과업이고, 오직 사회적으로 “영리하고” 능숙한 개체만이 개코원숭이 사회에서 성공적이기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사회적 유대를 정의하고 강화할 추가적인 수단을 획득하는 것이다. 여기에 걸맞은 예로는 물질적 자원과 상징들을 과업을 단순화하는 데 활용함으로써 사회를 창안하는 인간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더 복합적으로 되지만 덜 복잡해진다. 개코원숭이의 경우에 타자들 속에서 사회를 달성하는 데 많은 기술이 필수적이었다면, 이 선택지에서는 상징적이고 물질적인 유대의 창안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 결과로 행위자들은 이제 사회를 만들려고 출현하기보다는 그들을 압도하는 물질적 사회에 끼워 넣어지는 것처럼 보인다(앞서 논했던 [사회에 대한] 전통적 패러다임[의 관점]).

인간 사회에서 추가적인 갈래들이 나뉜다. “원시적” 사회는 최소한의 물질적 자원들로 형성된다. 자원의 증가는 “근대” 사회를 낳는다. 따라서 [자원을 동원하는] 테크놀로지는 거대한 규모로 사회를 건설하는 문제의 유일한 해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의 테크놀로지는 사회적이다. 그것은 사회의 수행과 개채들의 동원에 쓰이는 더 많은 자원을 재현한다represents.

우리의 이론적 모델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개체들이 한 번 군집을 이루고 서로를 피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동종간의 새로운 경쟁적인 환경에 이차적으로 적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적응에는] 두 가지 전략이 가능하다. 다른 표현형을 얻기 위해서 유전자형을 조작하기(진사회적eusocial 곤충), 아니면 향상된 사회적 기술로 유사한 유전자형의 표현형을 조작하기. 사회적 삶에 적응하는 유사한 몸들에게는 다시 다음의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오직 사회적 기술만을 활용하여 사회를 건설하기(비인간 유인원), 아니면 사회적 유대를 규정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추가적인 물질적 자원과 상징들을 활용하기(인간 사회). 인간 단계에서 다른 유형의 사회들은 그 사회가 사용하는 새로운 자원의 범위에 따라 형성된다.

정치

사회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탐색은 정치에는 어떻게 적용될까? 그 대답은 물론 정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Mackenzie, 1967). 가장 간단하고 넓은 차원에서, 정치는 단순히 “현명한, 신중한, 기민한 사람”에 의해 혹은 “편의에 맞고, 능숙하게 고안된 조치”로서의 정책에 의해 특징 지어진다(옥스퍼드 영어사전). 슈베르트(1986)는 종간 발전적 비교를 허용하는 정치의 정의를 제안했다. 그에게 정치란, 개인이 밀접한 관계의 타자가 아니라 큰 사회 집단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타자들에게 영향력과 통제력을 미치는 양식이다. 이러한 집단 안에는 집단의 문화적 규범을 결정하는 정책을 통제하기 위해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하위 집단이 있다.1

우리의 접근과 슈베르트의 제안 모두, 동종에 영향을 미치고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정치적 행위에서 중요한 측면으로 본다. 사회에 대한 수행적 정의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사회적 연결을 협상과 통제를 위한 활동적 시도로서 구상했다. 종들 사이의, 그리고 인간 집단들 사이의 차이점은 타자를 조직하고, 동원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규모에 있다. 우리의 모델에서 물질적 자원과 상징은 (개체가 타자에게 최소한의 영향력을 갖는) 제한된 안정성을 지닌 “무른” 사회와 (타자가 어떠한 현재하는 존재 없이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이고 “강한” 사회를 구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사회적 유대의 진화에 대한 우리의 버전을 통해 사회적 유대를 재정의하고 그것의 발전을 추적했듯이, 사회성의 시작에서 정치적 행위의 시작을 식별해낼 수 있을까? 개체들은 상대적으로 수동적이고 그들을 압도하는 사회로 진입한다는 전통적 관점은, 분명히 개체가 “행위자”가 되고 “사회란 무엇인가”를 정의할 주도권을 가질 때 정치적 행동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게끔 유도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러한 [정치적] 주도권은 진화적 시간 척도에서 매우 늦게 나타난다. 하지만 모든 행위자가 어느 정도는 사회를 “수행”하며, 처음부터 조사하고 탐사하고, 협상하고 재협상하는 활동적인 참여자라면, 우리는 정치적 행동의 시작점을 어디에 적당히 위치시킬 수 있을 것인가? 주요한 협상이 표현형의 출현 이전에 벌어진다는 이유로 진사회적 곤충을 배제해야 할 것인가? 인간이 아닌 영장류는 그들의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자원의 범위에 의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므로 배제해야 하는가?

슈베르트의 “생물학적 행동주의”에 입각한 정의의 요점은 비인간 영장류에 정치적 행위를 부여하는 일(적어도 최근의 몇몇 연구가 했던 일(e.g. deWaal, 1982))에 주의를 촉구하는 것인 한편, 우리 논의의 요점은 우리가 “사회”라고 부른 것과 정치라고 정의되어 온 것 사이에 더 밀접한 관련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개미, 개코원숭이, 그리고 이를테면 펜타곤의 기술관료들 사이의 중대한 차이를 지우지는 못한다.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차이의 근원을 강조한다. 즉 사용되는 자원들과 그들을 동원하는 데 요구되는 실천적 작업 말이다. 자원에 대한 우리의 정의에서 가령 유전자, 권력, 언어, 자본 및 기술은 모두 점점 더 지속적인 방식으로 타자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정치는 다른 것들과 분리된 하나의 행동 영역이 아니다. 우리가 보기에 정치는 많은 이질적인 자원들을, 갈수록 점점 더 부수기 어려워지는 사회적 연결고리로 엮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1 최근까지 “문화적 규범”은 선험적으로 비인간 동물을 배제해온 듯하다. 이제 동물의 “정신적 모델”에 대한 증거가 불거지고 있다(e.g. Griffin, 1981, 1984).


크리스틴 로스, 『공동의 유복』 서문



Kristin Ross, Communal Luxury–The Political Imaginary of the Paris Commune, London: Verso, 2014.

오역 있을 수 있음.

서문

이 책에서 나는 1871년 파리 코뮌으로 알려진 사건의 발단이 되었고 또 그 사건보다 오래 살아남은 상상계imaginary―파리 코뮌 지지자들과 내가 “공동의 유복”이라고 이름 붙였던 상상계―의 요소들을 한데 모아보려고 했다. 1871년 봄의 72일 동안 벌어진 노동자 주도의 반란은 파리라는 도시를 자치권 있는 공동체로 바꾸어 놓았으며, 결속과 협력의 원칙에 따라 사회생활의 자유로운 조직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그해 봄 파리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유럽 주요 도시의 서민들이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던 힘과 능력을 엘리트 지배 계급에게 행사한 것에 대한 충격에서부터, 그에 대한 국가적 보복의 야만성에 이르기까지―은 논란과 분석을 불러일으켜 왔다. 내가 여기에 스케치한 코뮌의 역사적 풍경은 지금 살아있는 것인 동시에 개념적인 것이다. “살아있는”이라는 말을 통해서 내가 의미하는 바는, 말해진 단어 자체, 채택된 태도들, 반란자들과 그들의 동료 여행객들 그리고 가까운 동시대의 지지자에 의해 수행된 물리적 행동들을 포함한 구체적인 질료들materials이다. 개념적으로, 그 단어와 행동 들이 그 자체로 많은 논리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나는 뒤따르는 페이지[이 책]에서 그것들에 따라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행동가들의 말과 창안을 집요하게 지속함으로써 우리가 코뮌의 구심적인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코뮌이 영감을 준 방대한 양의 정치적 분석 가운데, 파리 코뮌 지지자들Communard의 사상이 역사적으로, 심지어 그 사건의 기억에 정치적으로 동조하는 작가와 학자들로부터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사상―반란군들이 했던 것, 자신들이 행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말한 것, 그들이 자신의 행동에 부여한 중요성, 그들이 포용했거나 수입했거나 반발한 이름들과 말들―의 대부분[의 내용]은 쉽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가령 좌파 편집자 프랑수아 마스페로에 의해 (코뮌이 높은 주목을 받았던 마지막 기간인) 1960년대와 70년대에 재발행된 책들을 통해 말이다. 나는 사건 뒤에 코러스처럼 이어지는 정치적 논평이나 분석―찬양하는 것이든 비판하는 것이든―보다는 그들[행동가들]의 목소리와 행동 들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선호해 왔다. 나는 코뮌의 성패를 따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마찬가지로 그것 이후에 오는 운동, 반란, 혁명을 위해 코뮌이 제공할 수 있거나 계속 제공해 온 직접적인 교훈을 알아내는 데도 관심이 없다. 과거가 실제로 교훈을 준다는 것은 내게 전혀 분명하지 않다. 발터 벤야민의 경우에서처럼, 나는 특정한 사건이나 투쟁이 현재의 형태화 역량figurability에 생생하게 개입하는 순간들이 있다고 믿으며, 오늘날 바로 코뮌의 경우가 그렇다고 본다.

2011년 세계적인 정치적 장면은 진영 혹은 직업의 형상과 현상학이 지배하고 있었고, 직업적인 형식의 항의로의 회귀는 (내가 1980년대에 이미 썼던, 코뮌에 활기를 불어넣은 역사적인 시인들의 문제와는 다른 일련의 문제 설정과 함께) 다시 나를 파리 코뮌의 정치 문화로 돌아가도록 밀어붙였다. 뇌리를 떠나지 않는, 오늘날의 정치적 의제를 지배하는 관심사들―인터네셔널주의자의 결합, 교육의 미래, 노동, 예술의 지위, 공동-형식 그리고 생태학적 이론과 실천 등을 어떻게 개조할 것이냐 하는 문제―은 의심의 여지 없이 내가 코뮌의 문화를 바라보는 방식(바로 그들의 생각이 이 책 속에서 스스로 구조화되도록 함으로써)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대체로, 나는 오늘날의 정치 속에 코뮌의 반향들을 확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비록 내가 그러한 반향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지만 말이다. 그 ‘반향들’ 중 몇몇은 농담 같은 것인데, 『뉴욕 타임즈』가 2011년 11월,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의 한 거리에서 이름을 모르는 젊은 활동가를 인터뷰하면서 ‘루이즈 미셸’이라고 소개한 경우가 그렇다.[1]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찾는 데 썼던 노동자들과 장인들이 코뮌을 결성한 19세기의 노동 환경보다 한술 더 뜨는 자본주의의 동시대적 형식―노동 시장의 붕괴, 비공식적 경제의 증가, 과도하게 개발된 세계의 사회적 연대 시스템의 약화―아래 오늘날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운명이 몇몇 미래학자가 십년 전에 주장했던, 그리고 오늘날에도 계속 주장하려고 발악하고 있는,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창의적인 테크노-유토피아의 실체 없는[비유물론적]immaterial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은―특히 그리스나 스페인 등지에서 사회가 와해된 이후로―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파트타임으로 일하거나, 공부와 일을 동시에 하거나, 그들이 하기 위해 훈련 받았던 전공과 그럭저럭 살아가기 위해 찾은 일 사이에 걸쳐 있거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 통근 혹은 이주해야 하는 머나먼 거리와 타협하는 등―은 모두 나에게,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것처럼, 우리 부모님 세대의 세계보다 코뮌 지지자들의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와 더 가깝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비디오 게임 디자인, 해지펀드 매니저, 스마트폰의 관료 체계bureaucacy에 자기 커리어의 궤적을 위임하고 있는 오늘날의 젊은 사람들, 즉 다양한 비형식적 경제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기 위한 공간과 방식 들을 개척하려 애쓰고 있고, 번성하는―파국적 위험이 숨어있지만―글로벌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지금 다르게 살기의 가능성과 한계를 시험해 보는 젊은 사람들이, 1870년대 쥐라 산에서 발발한 코뮌 참여자 난민과 동료 여행객 사이에 있었던 논쟁에 관심을 기울이리란 생각은 내게는 완전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무정부주의적 코뮤니즘”이라고 불리는 것의 이론화를 이끌었던 그 논쟁은, 공동체의 세력을 탈중심화하는 문제, 어떻게 그들이 실체가 되어 번성할지의 문제, 그리고 유대 관계 속에서 그들 각자가 “연합”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코뮌의 반향을 오늘날의 정치 문화와 사건들에 더 명확한 방법으로 적용하기를 삼간다면, 현재, 특히 1989년 이후로 내가 그 사건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그 사건이 그것을 재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에 정박한 두 가지 지배적인 역사학으로부터 출항하는―마치 랭보의 「취한 배」처럼, 해방되는―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지배적인 역사학이란, 한편으로는 공식적인 국가-공산주의자의 역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 공화국의 국민적national인 역사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주입된 계통lineages과 서사적 구조들로부터 해방된 그것을 다른 틀로 밀어 넣어야 한다는 조급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국가-공산주의의 종말은 코뮌을 공식적인 공산주의 역사학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역할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그것은 1989년 이후로, 러시아혁명의 33번째 날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앞에서 있었다는―그다지 사실임직하지 않은―레닌의 춤으로부터 풀려났다. 그날, 새로운 혁명이 오래된 것을 실패한 혁명으로 변경시켰다는 그 혁명이 코뮌보다 하루 더 길게 지속되었다는 날로부터 말이다. 그리고 내 논쟁의 대부분은 코뮌이 한 번도 정말로 ‘프랑스 공화주의의 영웅적인 급진적 시퀀스’라는 프랑스의 국민적 허구―그것을 ‘19세기 말의 발작적인 반응’으로 치부하는―에 속했던 적이 없음을 명확하게 하는 방향을 따른다. 우리가 만약 코뮌의 잘 알려진 참여자 중 하나인 구스타브 쿠르베의 기록, 즉 코뮌이 지속되는 동안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이기를 포기했다”[2]는 말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또 죽었던 그 파리의 반란자들이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그랬다는 거창한 신념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파리 코뮌의 상상계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중간 계급의 국민적 공화주의자들도, 국가 주도형 집산주의도 아니다. ‘공동의 유복’은 그것을 포위하고 있는 (프랑스의) 부르주아들의 유복이 아닐뿐더러, 공리주의적 국가 집산주의자들이 20세기 전반세기에 경험했던 지배적인 세력의 성취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다른 참여자들이, 몇 년 후 코뮌의 정치적 구조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평가 한가운데, 다음과 같이 주장했던 게 아닐까 한다.

사건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옹호자들을 통해 [……] 코뮌은, 미래를 위한 더 우월한 이상 하나를 건립한다. [……] 그것의 탄생에 관한 전문가도 있을 수 없는, 타이틀이나 부유함도 없는, 카스트제건 봉급제건 간에 근원적으로 노예제가 없는 이상 말이다. 도처에서 “코뮌”이란 단어는 가장 거대한 의미로 이해되었다. 즉 새로운 인간성을 나타내고, 자유롭고 평등한 승리자들을 만들어내며, 낡은 범주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게 하고, 다른 세계를 향해 하나의 세계가 끝난 평화 속에서 서로 돕는 것으로서 말이다.[3]

부르주아지가 분리된 상태로 남겨 놓기 위해 분투하는 사회적 지형의 영역들―도시와 시골뿐만 아니라 이론과 실행, 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 등―을 함께 사고할 수 있는 코뮌의 포용력으로, 지지자들은 프랑스의 역사를 전혀 다른 기초 위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애썼다. 그럼에도 그 기초와 역사는 자신의 윤곽에 따라, 정확히 “프랑스적인” 혹은 국민적인 사유로 남아있을 수 없다. 그것의 윤곽은 한편으로는 그보다 작았고 동시에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했다. 코뮌의 상상력은 국제주의적인 지평선 속에 있지만, 지역 자치 단위의 규모에서 우선적으로 가동된다. 그것은 국민[적 차원]에서, 혹은 마찬가지로, 시장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자신을 위한 공간을 갖지 못한다. 코뮌의 상상력이 발생시킨 맥락―그것이 대대적으로 패퇴하게 되었던, 프랑스 국가나 억압적인 부르주아 사회가 자리잡은 시점보다, 그토록 광범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더 나은 순간이란 무엇인가?―속에서, 코뮌은 욕망들의 극히 강력한 집합으로 드러날 것이다.

앞서 이 서문을 시작할 때, 나는 코뮌을 노동자 주도의 반란이라고 일컬었다. 72일동안 지속되었던 그 반란은, 파리를 협력과 유대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삶이 재구성되었던 코뮌의 자치 구역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여러 요소를 가진 사건의 일면만 재현하는 이와 같은 단순한 묘사도 문제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공동의 유복”이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사건을 ‘파리 거주자들의 72일’―대포를 나포하려 시도한 3월 18일부터 5월 말 대학살의 마지막 피의 날들에 이르기까지―로 제한하는 통상적인 연대적이거나 지형학적인 틀을 넘어 확장시켜야만 한다. 알랭 달로텔과 다른 이들을 따라, 나는 그 사건을 제국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노동자 계급의 모임과 클럽에서 분출되었던 열기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본다. 또 나는 그 사건을 엘리제 레클루, 앙드레 레오, 폴 라파르그, 구스타브 르프랑세, 그리고 다른 이들을 비롯한 코뮌 참여자 난민들과 영국과 스위스의 망명자들이 그들의 지지자들과 동료 여행객들―마르크스, 크로포트킨, 윌리엄 모리스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협력했던 1870년대와 1880년대에 생산된 사유의 광범위한 탐색과 함께 끝마친 것으로 본다. 비록 지리적으로 봄의 반란으로부터 멀리 있지만, 그 사건의 동시대인들인 후자의 세 사람―덧붙이자면, 내가 다른 곳에서 그에 대해 쓴 바 있는 아루튀르 랭보의 경우처럼―은 몇 주 동안 파리에서 있었던 격변이 그들의 삶과 사고의 전환점이 된 많은 사람들에 속한다.

나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에, 코뮌을 관습적인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넘어 이러한 두 개의 인접한 장면으로 흘러넘치는 것으로 변경하고자 해왔다. 확장된 시간성은 [첫째로] 나로 하여금, 내전을―그것이 흔히 그렇게 규정되는 것처럼―국제전이 야기한 상황적인 곤궁과 애국심에서 우러나온 결과로 보지 않도록 해준다. 사실, 그와 정반대의 시야를 갖게 한다. 계속 진행 중이던 내전의 한 순간적인 양상으로서 국제전을 보도록 하는 것이다.[4] 둘째로, 프랑스 바깥으로의 망명의 움직임을 뒤쫓고 그에 따라 발생한 이론적 생산물들을 우선시하는 것은(그것의 선도적인 사상가들, 가령 프루동주의자들이나 블랑키주의자들보다), 일종의 이후의 삶[내세적 삶]afterlife―그러나 정확히 말해 나의 관점에서는 이후에 온 것이 아니라 사건 자체의 본질적 부분인―이주, 교차, 생존자들의 기록을 추적할 수 있도록 해준다. 프랑스 단어 survie[생존, 사후의 삶, 내세 등을 동시에 의미하는 명사]는 이것을 아주 잘 상기시켜준다. 즉 삶을 넘어선 삶. 사건의 추억이나 전통이 아니라―비록 그것들의 일부 형식이 확고하게 형성되는 중이라 할지라도―사건의 연장으로서, 도시의 거리들에서 있었던 반란의 최초 행동들까지, 사건의 논리를 위해 모든 조각을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것.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 투쟁의 지속이다. 앙리 르페브르의 말을 빌리자면, ‘살아있는 것과 개념적인 것 사이의 변증법’ 속에서, 운동에 대한 사유는 오직 운동과 함께, 동시에 오직 운동 이후에 발생한다. 즉 운동 자체의 창조적 힘과 스스로에 대한 과잉으로서 촉발된다. 행동이 꿈과 이상을 만드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사건의 과잉된 부분과 아주 긴밀하게 결속된 사유는 안전한 거리를 만들어내는 이론의 잘 조율된 수완을 갖고 있지 않다. 그 ‘거리’가 지리적인 것이건 연대기적인 것이건 말이다. 그 사유는 [사건의 과잉된 부분의] 순간을 인내심 있게 추적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그 순간의 실질적 구축의 지속되는 한 부분으로서 바라본다. 따라서 투박하지만 건설적인 사유가 된다. 그것은 소위 통상적으로 “고급 이론”이라고 말해지는 것과는 거의 닮지 않았다. 『프랑스 내전』은 『자본론』과는 다른 종류의 책이다. 그리고 예컨대 르클뤼와 모리스가 때때로 거칠고 체계 없는 사상가들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그들이 사유를 맥락context―이념들이 그 순간에 생산적인 동시에 즉각 효과를 낼 수 있는 장소로서의 맥락의 창조와 구축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십오 년 전 처음 엘리제 르클뤼에 대해 썼을 때, 그의 작업은 드문 몇몇 개척적인 반식민주의적 지리학자들, 가령 베아트리체 기블린과 이브 라코스테 등의 연구들을 제외하곤 사실상 알려진 바가 없었다. 오늘날 그는 막대한 양의 국제적 관심―미완의 생태학의 한 종류로서 그의 작업을 재고하려는―의 중심에 있다. 무정부주의에 대한 그의 저술들 역시, 크로포트킨의 저술들처럼, 새로운 관심의 주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윌리엄 모리스 역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사회주의적 생태학”의 논의를 설립한 하나의 목소리로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학술적 관점은, 나 자신의 사유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잠깐 지나치듯 언급하는 것을 제외하면, 모리스, 크로포트킨, 르클뤼의 정치적 사유에 근간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 즉 모리스가 “우리가 1871년 파리 코뮌이라 부르는, 노동의 자유를 근본으로 하는 사회를 설립하려는 시도”[5]라고 불렀던 것과 더불어 역사적 관계를 사유하는 것 말이다. 그 연결성을 설립하는 것은 이 책의 마지막 단원에서 하는 작업 일부이다. 또다른 초점은, 이 세 작가의 작업 속에 있는, 르클뤼가 연대라고 불렀고, 모리스가 “동료애”라고 불렀으며, 크로포트킨이 “상호 도움”이라고 불렀던, 심오하고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재사유rethinking를―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감수성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지침으로서―비교해보는 것이다.

운동의 즉각적인 사후적 삶survie―참여자들의 일생 동안 있었던 일―을 추적하면서, 나는 르클뤼가 자신이 쓴 책 중 가장 좋아했던 책 『시냇물의 역사L’Histoire d’un ruisseau』에서 빌려온 이미지 하나를 상기하곤 한다. 어린 학생들을 위해 쓰였고 종종 교내의 상으로 주어지기도 하는 그 작은 책에서, 그는 “바다의 파도가 물러난 뒤 모래에 나타나는 물길의 작은 체계”[6]의 구불구불한 형태를 상기시킨다. 우리의 목적에 따라 ‘파도’가 코뮌의 막대한 열정과 업적, 그리고 그것들을 파괴했던 대학살의 폭력을 의미한다고 본다면, 작은 물길은 거대한 힘으로 상충하는 두 운동 한가운데서, 공기가 통하는 작은 체계가, 어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증거가, 예측하기도 전에, 모래 위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급격한 변화와 교차와 협력을 포함한, 드물고 종종 수명이 짧은 동료들의 연대의 상징적 형태인 그 체계는, 아마도 일시적momentary이겠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무언가의 계기가 되는] 하나의 순간momentum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하고자 노력한 내용이다. 또 『시냇물의 역사』는 다른 면에서도 우리에게 유익한데, 그것이 코뮌의 불균형한 역사적 힘을, 그 사건의 비교적 미시적인 연관성 속에서 이해할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 책은 피에르줄 헤셀, 쥘 베른, 프루동, 투르게네프로부터 의뢰받은 시리즈에 속해 있었는데, 그들은 전형적으로 19세기 중반의 백과사전적 야망(흔히 역사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물들과 성분들의 역사, 즉 “역사들의 문학”을 청소년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그 시리즈를 고안했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유명한 천문학자는 하늘의 역사를 써 달라고 요청받았고, 비올레 르 뒤크는 브뤼셀 시청사와 대성당에 대해 저술했다.[7] 개울과 시냇물에 관해 쓰겠다는 르클뤼의 선택은, 일종의 병적이지 않은non-pathological 지리학적 규모, 예를 들면 들판이나 마을 혹은 지역 등에 대한 그의 선호를 반영한다. 아마 코뮌은, 르클뤼가 그의 책에서 산개울에 대해 갖춘 태도와 자질을 통해 가장 잘 형상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태도의 규모와 지리학은 살아가기에 적합한livable 것이지만, 거창한 것은 아니다. 르클뤼의 관점에서 개울은, 그것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강보다 더 나았다. 강물의 급류는 무수한 흐름에 의해 미리 조성된 깊은 고랑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반면 개울은 자신의 길을 만든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어떤 산개울의 물줄기의 강도는 아마존의 강과 비교했을 때 비례적으로 더 커진다.


[1]Malia Wollan, “Occupy Okland Reground, Calling for a strike,”, New York Times, November 1, 2011. [루이즈 미셸(1830~1905)은 대표적인 코뮌 참여자 중 한명으로서, 시인, 교육자,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역주]

[2]Gustave Courbet, letter to his parents, April 30, 1871, in Petra Ten- Doesschate chu, ed., Correspondance de Courbet (Paris: Flammarion, 1996), p. 266.

[3]Elisée Reclus, in La Revue blanche, 1871: Enquête sur la Commune[1897](Paris: Editions de l’amteur, 2011) pp. 81-2. Here and elsewhere, translations from French are mine.

[4]여기서 ‘국제전’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1871)을 말한다. 저자는 코뮌의 반란이 프로이센의 침략에 대항한 것이었다는 일반적인 역사적 관점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역주.

[5]William Morris, “The Hope of Civilization,” in A. L Moton, ed., the political writing of Willam Morris (London: Wishart, 1973) p.175.

[6]Elisée Reclus, Histoire d’un ruisseau (Paris: Actes sud, 1995), p.93.

[7] 외젠 에마뉘엘 비올레 르 뒤크(1814~1979)는 프랑스의 건축가, 중세 미술사가이다―역주.

엘리자베스 그로츠, 성차의 본성―이리가레와 다윈(계속 추가)

 

The Nature of Sexual Difference

irigaray and darwin

Elizabeth Grosz(2012)

Journal of the Theoretical HumanitiesVolume 17, 2012 – Issue 2: sexual difference between psychoanalysis and vitalism

오역 있을 수 있음.

나는 이따금 다음처럼 이상한 생각을 품곤 했다. 성차―성차는 뤼스 이리가레의 입장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핵심 개념이며, 그녀의 작업을 통상적으로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에 연관시키게 했다―의 문제에 기반한 이리가레의 작업이, 어쩌면 찰스 다윈에게서 기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진화론의 아버지이며, 프로이트의 작업에 역시 주요한 영향을 준 그 다윈 말이다. 이리가레의 개념은 다윈이 그의 두 번째 주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 정교화한 개념에 아마도 쉽게 연결되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성차에 관련한 이리가레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철학적 확증은 정신분석 이론이 아닌, 성 선택의 힘과 강제에 대한 다윈의 이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똑같이 아이러니하게도, 다윈의 작업은 자연적 실존을 구성하고 변형하는 힘에 대한 광범위하며 체계적인 설명일 뿐만 아니라, 생의 모든 풍요와 복잡성을 야기하는 성적 매력과 성차의 무정형한 힘에 대한 최초의 이론적 체계로 이해될 수 있다.

이리가레가 성차를 문화적 삶의 동력으로 생각했다면, 다윈은 그것을 자연적 실존의 동력으로 보았다. 여성의 사회적인, 문화적인 그리고 말 그대로의 내적 종속을 명확히 논파했던 이리가레의 그 개념이 생물학적 이론과 공명할 수 있을까? 다윈의 혁명을 통해 변형된 생물학은 성차를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자원을 페미니즘적 사유에 제공할 수 있는가? 성차는 사회적, 문화적 삶에 의해 규정되는 문제들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생 자체를 복잡하게 하고 증식시키는 자연적 도발의 일종으로 생물학이 전념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지 않은가? 성차는 다양한 인간과 비인간 형태를 막론하고 생의 보편적 문제인가? 아니면 성차는 수많은 문화적 차이들, 말하자면 오직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삶을 특징짓는 풍요와 갈등을 구성하는 인종, 계급, 민족, 종교와 같은 차이들 중 하나일 뿐인가? 나를 포함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성차가 근본적으로 문화적이며 가변적이라고 단언하기 위해 오랫동안 힘들게 분투해왔다. 그러한 개념인 성차가 생물학에 의해 근거지어지고 정교화된다면, 성차의 존재론적 지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리가레와 다윈이 서로에게 가장 급진적인 통찰의 빛을 비추도록 할 수 있을까?

나는 다음 난제를 다루고 싶다. 성차는 생물학적인가? 그리고 성차가 최소한 일부분 생물학적이라고 한다면, 역사적·지리적으로 가변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열린 결말로서의 그것의 지위는 약화되는가? 성차가 생물학적이라는 말은 그것이 선험적 차이들의 자기-충족적인 연속이 아니며, 다른 모든 차이화의 형식에서 분리될 수 있으며, 그러나 다른 모든 차이들에 내속적이라는 것을 함의하는가? 이리가레가 사회적이고 개념적인 삶에 대한 분석에서 발전시켰던 그 개념, 성차가 자연계에서 갖는 존재론적 지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문화계에서의 존재론적 지위는? 그리고 대부분의 정치 이론에 매우 핵심적인, 자연과 문화 사이의 이행 속에서는? 이 기획에서 나는, 다윈주의적 해석이 페미니즘적 읽기에 개방되도록 이리가레와 다윈이 성차에 대한 서로의 개념을 마주하게끔 할 것이다. 이 읽기는 다윈과 동시대인이었던 일련의 페미니스트와 달리 두 성별의 동등함이 아니라 그들의 차이, 그들의 자율성 그리고 심지어 그들의 급진적인 통약 불가능성을 겨냥한다. 마찬가지로 문화적, 정치적, 언어적 차이들에 우선적으로 집중했던 이리가레의 작업을 자연과 동물에 관련한 새로운 종류의 문제들에 개방할 것인데, 이 문제들은 그녀가 주안점을 두지는 않았지만 성차 개념을 더 풍요롭고 정교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윈과 이리가레의 결합을 통해 예측할 수 없는 진화적 효과, 일종의 교차-돌연변이를 만들고 싶다. 여기서 나는 성차를 (자기와 타자의 관계로서) 상상계나 (사회적, 언어적, 법적 관계로서) 상징계가 아니라 라캉적 의미에서 실재계에 위치시키고 싶다. 성차는 인간 개체나 사회적 질서보다 선재하며, 그것이 상징적 질서가 반드시 마주하는 어떤 문제와 도발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질서를 초과하는 실재의 강제력에 속한다. 여기서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성차의 상상적 혹은 상징적 재현보다는 성차의 존재론, 성차의 실재이며, 생물학적이며 문화적인 확산의 양식으로서 그것의 강제력이다.

따라서 나는 성차와 관련된 이리가레의 기본적인 수칙을 개괄적으로 논하고 존재론적, 정치적, 윤리적 원칙으로서 이 개념을 설명하는 데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 그리고 다윈의 성 선택에 대한 설명의 핵심 요소를 정교화할 것인데, 그럼으로써 둘의 공명을, 굴절되고, 변형되고, 우리의 해석에 열릴 수 있는 그들의 수용력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다윈의 작업[성 선택]은 단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비-환원주의적인 방식으로) 문화적, 사회적 용어이기도 하다는 점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고, 이리가레의 작업[성차]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삶의 형식적 힘만큼이나 자연과 생명의 충만한 힘의 지배적 원칙이기도 하다는 점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1. 이리가레와 성차의 개념

성차 개념에 대한 이리가레의 이해는 이제 꽤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개념을 정교화한 그녀의 초기 작업 이후로 삼십 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주 잘 이해되고 있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 이 개념은, 동시대 페미니즘 이론에서 가장 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지식의 모든 형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연구 패러다임 전체와 사회적, 문화적, 관계적 삶의 주요한 변형들을 수반하는 정치-윤리적 프로젝트 양쪽을 정교하게 할 수 있다. 성차는 삶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진 개념이고, 우리가 자연과 문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개념이다. 이리가레는 성차가 우리 시대의 문턱에 있는 개념이자 현재를 규정하는 단독적인 철학적 주제임을 아주 설득력 있게 논했다.

성차는 우리 시대의 주요한 철학적 주제 중 하나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각 시대는 사유하는 하나의 주제, 오직 하나의 주제를 가진다. 아마도 성차는, 우리가 그것을 통해 사유한다면 우리를 “구원”할 우리 시대의 주제이다. [……] 성차는 몸과 살의 다산성을 제거하지 않으면서 세계의 범위를 지금까지―적어도 서구에서―알려진 어떠한 한계보다도 풍요롭게 구성할 것이다.[1]

이리가레에게 성차는 단지 여성, 페미니스트, 여성의 투쟁에 참여하는 활동가에게만 가장 흥미로운 개념인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주장은 그보다 더 강하다. 그녀가 주장하는 것은 성차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중대한 철학적 개념, 가장 중대한 사유, 주제, 이념이라는 것, 우리 영역의 사회적, 정치적, 지적 집중을 정향할 개념이라는 것이다. 신중하게 말해, 그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영향을 주는 다른 모든 개념과의 얽힘―우리가 현재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형식 속에서 일반적으로 동화되지 않고 존속하는 모든 차이와 관련 있는 모든 개념, 즉 성적 지향, 인종적 혹은 민족적 용어들, 종교적, 경제적, 지리적, 정치적 차이들―을 통과하면서, 성차는 우리 자신, 세계, 개념성 자체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문턱을 표시한다. 성차는 다른 모든 사회적, 정치적, 개인적 차이와, 인식된 차이들을 가로지르는 단일한 주체를 제공하는 유대의 [교차적] 얽힘을 이해하기 위한 중심축이 되는 개념이다. 이것이 성차가 그저 다른 모든 차이 중 하나인 것이 아니라 개념성 자체를 열어젖히는 개념이요 탁월하게 철학적인 개념인 이유다. 또 그리하여 성차는 삶에, 사회와 그것의 모든 구성물에, 삶보다 더 거대한 것에, 사회적인 동시에 자연적이고 또한 신적이기도 한 것에 영향을 미치는 개념이다. 이리가레에게 성차는 가부장제에 의해 억압되어 온 것으로서, 그 개념의 정교화는 우리 자신에 대한, 세계에 대한, 미래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변형할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내가 20세기 철학의 구성적 개념이라고 믿는 차이 자체와 더불어, 성차는 모든 살아있는 차이의 동력이며, 그것의 정교화는 현재를 특징짓는 연구 패러다임과 개념성의 형식을 규명하는 데 기여해왔다. 소쉬르, 데리다, 들뢰즈의 대조적인 저술에서처럼 성차가 순수 차이의 정교화 혹은 국지화인가 아니면 이리가레의 주장처럼 순수 차이 자체가 성차의 결과인가 하는 문제는 내가 여기서 직접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문제는 종종 이리가레와 그의 동시대 (남성) 철학자들의 관계를 간결하게 드러낸다.[2]

이리가레의 가장 날카로운 독자들(화이트포드, 버크, 모텐슨, 스코르)과 더불어[3] 나는 성차에 관련한 그녀의 중심 주장―이 주장들은 이리가레의 초기 텍스트에서 면밀한 디테일을 다듬어나갔다―을 요약하면서 그 개념에 대한 이리가레의 설명을 개괄적인 형식으로만 발전시켜보려 한다.

  • (1) 성차는 성들 사이의 가장 기초적인, 약분할 수 없는, 비-상호적인 차이이고, 다른 성의 몸, 역할, 위치를 대신하지 못하는 한 성의 불능incapacity이다[성차 때문에 한 성은 다른 성의 몸, 역할, 위치를 대신할 수 없다].[4]
  • (2) 성차는 형태학적인 차이, 몸의 차이이고, 몸의 함의와 의미상의 차이이며, 몸을 통해 개발되는 세계에 대한 인지적이고 질적인 몰입이다. 많은 페미니스트가 이러한 ‘몸적bodily’ 차이를 해부학적인 혹은 주어진given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이리가레는 살아있는 몸적 차이를 결코 날것의 자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의미를 통해 중개된 것으로 보았다. 남자와 여자의 몸은 결코 해부학적인 단순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의 정신-사회적 측면에서 살아간다. 성차는 그것의 본성이 아니라 그것의 가치와 용도의 측면에서 고려된 구별되는 몸의 개념이다.[5]
  • (3) 성차는 단지 약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헤아릴 수 없고 계산할 수 없는 것으로, 측정을 위한 외부가 없고 제삼의 항이 없으며 이 관계나 구성 요소를 계량할 어떠한 객체도 없는 용어들 사이의 관계다.[6]
  • (4) 그러므로 성차는 마치 사과나 오렌지처럼 독립적으로 주어진 두 전체, 두 성 사이의 상대적인 차이가 아니다. 성차는 두 개의 자율적인 전체의 비교나 대조[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의 차이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두 성을 구성하는 관계다.
  • (5) 성차는 그 자체로, 혹은 그것의 개념적, 정치적 표현에 적합한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록된 역사가 다양한 유형의 가부장제 역사임을 고려할 때, 성차는 남성과 그의 남성화된 특성을 긍정적으로 간주하고 여성과 그녀의 여성화된 특성을 그러한 긍정적 측면에 반하는 것으로 여기는 대립의 형태로 축소되어왔다. 가령 여성적인 것을 스스로 보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적인 것을 보충하는 것으로만 간주하는 성적 상보성complementarity, 혹은 여성과 여성적인 것을 남성과 남성적인 것의 일종 아니면 공식적으로 같은 것으로 여기는 성적 동등성 등의 형태 말이다. 여성성을 남성성의 필요나 이해관계[의 대상]로 치부하는 이 모든 가부장적 환원의 형식들 속에서 성차는 대립이나 상보성 혹은 동일성으로 축소된다. 여성적인 것은 가부장적인 사회와 재현 시스템 속에서 그 형식들 아래 재현될 수밖에 없다.
  • (6) 그러므로 성차는 두 성의―한 성에 다른 성의 이해관계를 강요하는 가부장제의 사회적 제약을 강하게 반영하는―현재하는 특질, 자질, 특징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성차는 결정 불가능한,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럼에도 존재할 수 있고 스스로 정교화할 수 있는 무엇이다. 성차는 그것이 제거된 형식으로만, 즉 두 성 사이의 동일성, 대립, 상보성 따위의 형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데, 이 형식들에서 여성은 알려진 모든 것으로서의 남성과의 모종의 관계 속에서만(남성에 의해 제시된 규범에 비추어 어느 정도 동등하거나, 의존적이거나, 자율적인 것으로서) 이해된다. 성차는 결정 불가능한 차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두 존재, 생성의 과정에 있는 두 존재 사이의 차이이다. 그것은 언제나 그 자체로 차이화의 과정에 있는 차이이다.
  • (7) 성차는 차이의 형식이자 자신을 차별화하는 차이화의 방식이다. 그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의 형식이기도 하며, 그 강도intensity의 열린 결말이 재생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은 아닌, 두 몸을 특정하게 연결하는 성애적 만남의 방식이다. 몸적 차이로서 성차는 생식기의 차이로 환원할 수 없지만 그러한 차이들을 포함하며, 그 차이들이 필연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실천들을 포함한다.[7]
  • (8) 성차는 보편적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문화적인 만큼이나 전적으로 자연적이다. 게다가 그것은 자연에서 문화로 이행하는 변형의 두 방식을 표시한다. 그것은 다른 자연적, 문화적 차이들이 출현하는 조건으로서 보편적으로 체험된다.[8]
  • (9) 성차가 두 성 사이의 실질적인 만큼 잠재적인 관계들을 특징짓는다면, 그 관계는 재생산으로 축소될 수 없다. 재생산은 성차의 간접적 산물이지만 결코 그것의 목적telos이나 목표가 아니다. 성차는 세 번째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존재의 실존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 세 번째 존재는 둘의 산물이긴 해도 둘에게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삼항은 언제나 이항[여성 혹은 남성] 중 하나인 아이와 동일시될 수 없다. 이 삼항은 둘의 관계에서 생산된 무언가 새로운 것, 둘 사이를 조정하거나 둘의 관계를 확증할 수 있는 어떤 사물, 자질, 관계다.[9]
  • (10) 성차는 단지 남성과 여성의 성 정체성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성차의 영향은 그것의 실재에까지 가닿는다. 성차는 단지 다른 주체의 약분할 수 없는 두 유형의 실존이 아니고, 적어도 다른 두 개의 약분할 수 없는 인격, 관점의 틀, 경험, 개념화의 방식, 지식의 형식, 존재의 기술이며, 어떠한 활동에 임하는 적어도 두 개의 다른 방식이다. 성차의 존재론은 주체, 객체, 세계 자체와 다르게 관계하는, 성적으로 차이 나는 인식론과 실용적 형식들을 수반한다.
  • (11) 성차는 그저 하나의 공유된 세계가 아니라 다수의 세계들이 존재하는 조건이다. 성차는 세계와의 형태학적인, 지각적인, 연합적인 관계를 [홀로] 점유하는 개별 주체들뿐만 아니라―주체가 즉각 이용할 수 있는 세계와는 다른,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공유하는 세계를 마주하고, 접촉하고, 공동-점유하는 역량을 통해 다른 형태학적이고 지각적이며 연합된 관계에 간접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주체들을 수반한다. 나와 성적으로 다른 누군가는 내가 점유한 것과는 다른 세계를 내게 제공할 수 있는 자,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는 누군가이다.
  • (12) 틀림없이 이리가레의 가장 논쟁적인 주장은 성차가 다른 모든 차이의 생산에 관여하는 동력이자 힘이라는 것, 그러므로 그것이 인종, 민족, 종교, 계급을 비롯한 차이들의 기저에 있는 근본적인 차이의 존재론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 성차가 다른 모든 차이에 보편적으로 동반되는 것인 동시에 그 차이들의 전송과 전파를 위한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이다. 어떤 다른 차이도 성차처럼 자연에서 문화로 이행하는 관계에 있지 않고―즉 다른 모든 차이는 [단지] 사회적이고 문화적이다―다른 어떤 사회적 차별의 형식도 성차와 협동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전파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개요는 이리가레의 구상을 그것의 가장 기초적인 공식으로 축약해버리는 것이지만, 눈부신 보석 같은 개념의 다채로운 요소와 측면을 요약하는 이 시도는 수많은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 곳곳에 각인된 평등주의적 프로젝트에 대한 이리가레의 적의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성, 인종, 계급이나 민족 사이의 동등함을 직접 겨냥하는 어떤 평등주의적 프로젝트던, 이리가레의 관점에서는, 차이를 특정화하는 프로젝트와는 적대적이었다. 평등주의적 프로젝트들은 동등함을 달성하기 위한 ‘중립적’ 수단, 언제나 지배적 위치의 가치를 반영하는 수단을 동원한다. 평등주의의 결과는 주어진[기성의] 용어, 이상, 가치가 되어가는 동등함이다. 성차에 대한 이리가레의 연구는, 통약 불가능한 차이를 특정화하는 작업에 집중한 다른 페미니스트와 반인종주의자의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동등함을 기입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가변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문제 삼고, [이미]그렇게 측정된 성별이나 인종과 독립적으로 측정될 수 있[다고 여기]는 성과 인종의 주어진 규범을 문제 삼는다. 이리가레의 독특함이자 철학에 여전히 기여하는 특징인 그녀의 반-평등주의와 반-본질주의, 그리고 현재와 실제에 미래와 가상 이상의 특권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그녀의 태도는 성차에 대한 그녀의 이해의 핵심 요소이다.

2. 자연과 문화

성차는 자연계, 문화의 다중적 형식, 자연에서 문화로의 다양한 이행을 특징짓는다. 이것이 이리가레에게 성차가 구성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소여]given인 이유다. 물론 주어진 것이라 해도 그것은 역시 체험되고, 창안되고, 발명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리가레의 입장은 복합적이며, 사회구성주의자라고 추측할 수 있는 이들의 많은 반대를 이미 예상하고 있다. 성차가 자연을 특징짓는, 자연계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 중 하나임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을 고정되고 변함없는 것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성차는 문화의 모든 형식이 지닌 특성이자 모든 문화가 마주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문제다. 문화는 또한 죽음과 문화적 전파를 다룰 수밖에 없고, 이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삶의 방식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은 문화적 필연성이 된 생물학적 우연성이다. 이리가레는 자연 자체가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연을 생물학적 설명으로 좁게 환원하는 특정 방식이 그럴 뿐이라고 이해했다. 이리가레에게 문제는 생물학이 아니라 생물학이 남성적 사고에 지배되어온 방식이다. “여성을 착취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여성적이기보다 남성적인 용어로 해석된 생물학이다.”[11]

우리가 자연적인 동시에 문화적인 존재라면, 문화와 자연의 관계가 폐기나 극복이 아니라 공존이자 서로 관여하고 정교화하는 방식이라면, 문화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방식이고 자연적인 것은 문화적 창발의 조건이라면, 자연을 내던져버리거나 넘어서는 것이 아닌, 자연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자연에 대한 새로운 역동적 개념이 필요하다. 자연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변화의 결과가 경직되거나 고정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자연이 변화의 생산 방식이라는 점(그러므로 고정되거나 경직되거나 불변하는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따라서 자연은 반-역사적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역사적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자연 자체가 이미 성적[有性]sexed이라는 점, 성차가 살아있는 것들(식물, 동물, 인간)의 세계를 표시한다는 점, 혹은 자연 자체가 적어도 둘이라는 점.

자연은 적어도 둘이다. 둘이란 남성과 여성이다. 보편적으로 자연을 극복하려는 모든 사변은 자연이 하나[一者]가 아니라는 점을 망각한다. 그 너머로 가기 위해서는―이 추론은 필수적이다―분절점으로서의 실재를 만들어야 한다. 자연은 이다(작음/큼, 어림/늙음 같은 이차적 차이들을 순서대로 포함하는 이다). 보편적인 것은 하나로서 사유되어왔고, 하나에 기반해 사유되어왔다. 그러나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한계는 자연 자체에 내재해 있다. 자연을 뛰어넘을 필요성을 묻기 전에, 자연이 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이 둘은 자연 자체에 유한성을 기입한다. 어떤 자연도 자연 전체와 일치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단독적 총체로서의 [대문자] “자연”은 없다.[12]

이리가레는 자연의 새로운 개념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서구 철학사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자연에서 사회의 기원이나 출발점을 찾는 대신 자연 자체를 생산의 현장으로 보는 것이다. 만약 자연이 결코 하나가 아니라 항상 적어도 둘이라면, 그리고 자연이 존재의 형식이기보다는 되기의 방식이고, 고정성이나 불변성의 형식이기보다는 시간적 변화의 방식이라면, 지배적인 서구 사상사에 비춰봤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새로운 사고의 논리, 개념성 자체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가 열린 결말의 역동적인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문화가 다룰 보편적 질문을 제기하면서도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교화와 발전의 방식만을 제공할 것이다. 이리가레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다듬어나가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남성적 과학, 테크놀로지, 경제에 의해 취해진 지배, 억제, 통제의 폭력적 힘과는 매우 다른, 자연에서 문화로 이동하는 새로운 모델의 창안에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유를 되찾기 위해 출발해야 하는 곳은 바로 자연이다. [……] 그것이 출현하는 방식이나 그것의 다양한 현현을 차치하더라도, 자연은 적어도 이다. 둘이란 남성과 여성이다. 이 분할은 이차적인 것도, 인간종에 특유한 것도 아니다. 둘의 분할은, 그것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모든 살아있는 것의 영역을 가로지른다. 성차가 없다면, 지구상에 생명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성차는 생의 생산과 재생산을 위한 조건의 현현manifestation이다.[13]

이리가레에게, 성차의 정치적, 문화적 과업은 나 자신이 되는 것, 자연적으로 주어지지만 문화적으로 개발되고 다듬어지는 존재를 사회적, 개념적으로 배양하는 것, 나이면서 내가 될 수 있는 그 자연을 개방하고 개발하는 삶의 방식을 창안하는 것이었다. 문화는 자연을 극복하거나 다시 쓰는 것rewriting이 아니라 자연을 경작하고, 증대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문화는 자연을 (죽은) 상품으로 환원하는 것 이상일 수 있고, 이상이어야만 한다. 성차에 대한 더 적절한 인식을 통해 보면, 문화는 자연에 대한 억제, 지배, 통제보다는 자연을 개방하는 것이다. “나의 기획은 내 자연적 정체성의 기반에 의해 제약된다. 그 목적은 내가 있는 그대로가 될 수 있도록 그것의 함양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타자와 함께 창안하기 위해 나의 본성을 정신화하는spritualize 것이다.”[14]

성별 간 새로운 종류의 관계는 자연이 고정된 원형들의 집합으로 축소된 것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재인식될 때에만 가능하다. 사회 질서를 구성하는 관계들―대인 관계, 생산과 창조의 관계―은 그 자체로 오인식된 자연, 그것의 개방성이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자연에 근거하고 있다. 성차를 보다 적절하게 인식하는 새로운 일련의 사회적 관계는 자연에 대한, 자연과 문화의 근본적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포함한다.

여성들이 그들의 사회적, 정치적 권리의 인정을 획득하는 데 있어 겪는 어려움은 생물학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불충분한 사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생물학이 여성을 착취하는 데 역설적으로 사용되어왔다는 이유로 생물학적 종류의 모든 설명을 거부하는 것은, 이러한 착취를 해석하는 열쇠를 거부하는 것이다. [15]

이리가레는 자연의 새로우면서도 다른 개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음을 인지했다. 그 개념은 협소한 과학적 특성화를 통해 인간의 자원,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나 (일시적으로) 유용한 상품 따위로 환원된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연결과 자연을 경작할 우리의 문화적 의무를 이해한 개념이다. 자연은 이리가레게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시작되는 곳, 선사시대의 장소, 문화의 갱신과 변화의 원천을 제공한다. 문화의 타자로서 자연은, 문화와 인간이 스스로를 갱신하고 변형하는 시공간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자연은 재탄생의 장소이다. 자연은 제 2의 어머니이지만, 동시에 성별화된 우주이기도 하다. 자연은 인간의 세계, 가공된 세계 속의 삶과 공유를 위한 대안적 장소를 제공한다. 나는 그것을 이용하거나 잊어버리기보다는, 그것을 찬양하고 노래하려고 노력한다.[16]